지난 라이딩 때 사소한 부주의로 넘어져 갈비뼈 골절이 되었다. 팔꿈치와 무릎에 심한 타박상도 입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좁은 길에서 우회전하다가 자전거길 중앙분리대를 살짝 건드렸는데 우습게도 꽈당 넘어졌던 것이다.
넘어졌던 그곳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수없이 오갔던 장소이다. 초보인 그때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는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보름 동안의 입원으로 인해 일상이 많이 흐트러졌다. 지루한 병실생활에 지쳐가고 있던 즈음에 가까운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 <여행의 이유>.
김영하 님의 작품은 <오직 두 사람>을 통해 처음 접했었다. 두 번째로 읽은 책 <여행의 이유>는 퇴원을 하면 바로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지금 치료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이 책은 어떤 장소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일을 통해 '여행'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서술해놓은 산문이다.
이 책은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작가의 말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를 마치 긴 방랑처럼 기억된다고 했다. 정처 없는 유랑의 시기에 좋아했던 책들도 여행 이야기였다.
삶이 끝없는 이주일 때 여행은 사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가져다주는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알게 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64쪽)
여행을 떠나면, 해야 할 일들이 잔뜩 밀려있거나, 고통이 묻어있는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잠시나마 그것들이 없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떠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떠난 순간만큼은 현실에 닥친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 같고, 그것은 내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사라진 작은 새로운 공간에서 누워 마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은 설레게 한다.
인생과 여행은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24쪽)
여행은 내가 떠나기 전에 계획하고 생각했던 그대로 수월하게 착착 진행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예상치 못하게 숙소를 잡지 못할 때도 있었고, 예약한 곳이 시설이 형편없어서 실망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것에서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것은 여행지 숙소에서 받은 실망을 상쇄해주었다.
조금씩 어떤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긴다. 옆집이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가 너무 시끄러워진다거나 하는 일들.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떠나면 그만이다. 잠깐 괴로울 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203쪽)
일상에서 힘든 일이 겹치거나 반복되면 처음에 묵묵히 견뎠던 일들도 통제력을 잃어간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럴 때 우리는 여행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떤 여행은 힘들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불안하기도 하고,
이번 자전거여행때처럼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과도한 지출을 요하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여행이 필요하다.
힘든 일상, 지루한 일상이 부재하는 여행이..
혹자는, '여행의 좋은 점은
집이 최고다 라는 걸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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