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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무진기행 줄거리/ 김승옥

<무진기행>은 1964년 [사상계]에 발표된 김승옥의 대표작이다. 나는 이 책을 서른 무렵에 처음 읽었다. 그때 읽고 작품을 한 문장씩  대학노트에 필사했었다.

작가 김승옥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 연습'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파괴된 우리 역사의 끄트머리를 당대의 시각에서 탁월하게 재구성하는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65년 단편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 문학상을, 1977년 단편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는 '무진기행'외에 1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무진기행 줄거리>   

나는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가는 버스안에 있다. 무진에서 며칠 쉬다 오면 아내와 장인이 대회생제약회사 전무로 만들어 줄 것이다. 무진으로 간 것은 몇 번 안되지만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나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갔었다. 그곳에 가면 새로운 용기나 계획이 나오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항상 골방에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깨어있을 때는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한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잠들어 있을때는 긴 악몽들이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어둡던 세월이 지나가버린 지금은 거의 무진을 잊고 있었는데 역 구내에서 미친여자를 보면서 어두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머니에게 이끌려 의용군의 징발과 국군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골방에 처박혀 지냈던 세월,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을 견디며 썼던 일기장들.. 그런 세월들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박이라고 하는 무진중학교 후배를 만나 세무서장으로 출세한 조의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음악교사 하인숙을 알게된다. 가벼운 술자리에서 하인숙은 목포의 눈물이라는 유행가를 부른다.

나는 하인숙이 부르는 노래는 유행가도 아니고, 이전에 없던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포함하고있는 새로운 노래라 생각한다. 후배 박은 그런 하인숙을 속물이라고 말한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다음날, 어머니 산소를 다녀오던 길에 자살한 술집 여자를 본다.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던 게 이 여자의 임종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금해제 사이렌이 불고 여자가 약을 먹고 그제야 슬며시 잠이 들었으니까.. 갑자기 여자가, 아프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오후에 하인숙을 만나 옛날에 방 한칸을 얻어 요양하면서 일 년을 보냈던 바닷가의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보낸 일 년을 생각하면 '쓸쓸하다'는 말 뿐이었다. 나는 옛날의 내가 되어 옛날에 내가 들어있던 방에서 하인숙과 하룻밤을 지낸다.

서울에 있는 아내로부터 급히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무진에 와서 내가 한 행동들, 모든것이 세월에 의하여 마음속에서 잊힐 수 있으나 상처는 남는다고 생각한다.

옛날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 하인숙에게 사랑을 느끼고, 무진을 떠나 자신에게 와 달라는 편지를 썼지만 찢어버린다. 무진읍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 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160쪽)  

그는 무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니, 나는 다시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4쪽) 

"<어떤 개인 날> 불러 드릴께요." "그렇지만 오늘은 흐린걸."  나는 <어떤 개인 날>의 그 이별을 생각하며 말했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191쪽)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자기일에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하여 고향인 무진을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거기에서도 자신을 찾지 못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알 수 없는 행동만 하게 된다. 희미한 안갯속에 하는 여행이다.

우리가 사는 생은 누구도 알 수없는 안갯속의 삶이다.

우리는 떠나보지만 결국은 자신이 떠나온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누구나 자기 있는 곳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