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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해안여행] 강릉 오죽헌 & 정동진

어젯밤 우리를 숙면에 들게 해 준 고마운 비가, 태풍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아침에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어두운 하늘과 닮은 잿빛이다. 회색의 바다는 부드러운 파도를 밀고 들어왔다. 간밤에 화가 난 바람은 진정이 되었고, 차분하게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비 갠 맑은 경포호를 아침 공기를 가르며 시원하게 한 바퀴 달려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오늘은 어제 급히 오느라 그냥 지나쳤던 오죽헌에 들리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코스였었지.

오죽헌은 수십 년 전 왔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넓고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있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인 오죽헌. 입구부터 만개한 배롱나무꽃을 비롯해서 예쁜 꽃과 오죽으로 화단을 단장했다.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 이라고도 한다.

 넓은 광장을 천천히 걸어서 율곡 이이의 영정이 모셔진 문성사를 지나면 오죽헌에 다다른다. 뒤뜰에 줄기가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오죽헌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곳에는 신사임당이 태몽으로 용꿈을 꾼 몽룡실이 있다. 여기 기둥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임부는 아니지만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이밖에 율곡기념관,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율곡의 동상이 있고. 오천 원권 지폐 배경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있다. 정원이 아름답고 단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하튼 입장권 3000원의 가치는 충분히 하는 것 같다. 

오늘 하늘은 변덕이 무척 심하다. 어둑어둑하다가 강렬한 햇빛이 쨍쨍 내리쬐기도 하고, 해안도로를 찾아 길을 돌고 돌아서 모래시계가 있는 정동진역에 도착했을 때는 또다시 강한 바람과 함께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정동진역. 기차표를 끊지 않아서 역안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모래시계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온 바다. 나름 운치 있다.

저 멀리 배 모양의 썬크루즈 리조트가 보인다. 저기다 숙소를 잡으면 동해바다의 절경이 한눈에 잡힐 것 같다. 다음번에 예약하고 꼭 한번 와보기로 했다.

가을이 깊어갈 때 다시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썬크루즈 쪽에서 올라가는 언덕길에 바다부채길이 있다. 이쪽으로는 자전거로 몇 번 왔었지만 오르막이 심하기도 하고 그땐 갈길이 바빠서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은 없다.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올라갔다. 심곡항 방향으로 가는 바다 부채 길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막혀있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아쉽게도 끝까지 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지만..

 

 

 이젠 왔던 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내려가야 밤이 되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가 있다. 동해안을 다 돌아보기에는 이박삼일은 너무 짧다. 종일 운전을 해서 피곤하다고 하는 그녀. 다음엔 좀 더 여유를 갖고 쉬엄쉬엄 다니는 것을 생각해봐야겠다.

여행은 우선 어디든지 떠나는데 의미가 있다. 급하게 달려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우리는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거니까.. 

 빠르게, 급하게 가다 보면 힘도 들고 놓치는 것도 많을것이다. 그러면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난이 될 수가 있다. 느리게 살아야 많은 것이 보인다.

휴양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한 곳에서 조용히 쉬었다 오고도 싶다. 지금처럼 생각이 복잡할 때는 더 떠나고 싶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가 그때 무슨 일로 힘들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