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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바깥은 여름 / 김애란

작가 김애란 님의 글은 이 책에도 실려있는 '침묵의 미래'에서 처음 접했다. 2013년 이상문학상 작품이기도 하다.

<바깥은 여름>은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과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작가의 말

7개의 단편이 다 묵직하고 여운을 많이 남기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죽음과 이별로 인한 상실감, 우울한 내면의 이야기들이 이 책 전반에 흐른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젠 다시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21쪽) 

[입동] 젊은 부부는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하다가 경매로 싸게 나온 집을 대출을 끼고 마련하고 나자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아서 정성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집에 애착을 갖는다. 그러나 다섯 살 난 아들 영우를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잃게 된다. 아이를 잃고 나니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게 슬프고 집안 곳곳에서 부부를 떠나지 않는 아이의 환영이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판다. 

에반의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들거렸다. 찬성이 에반의 입매, 수염, 콧방울, 눈썹 하나하나를 공들여 바라봤다. 그러자 그 위로 살아, 무척, 버티는, 고통 같은 말들이 어지럽게 포개졌다. - 있잖아, 에반. 나는 늘 궁금했어.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 (62쪽)

[노찬 성과 에반]  골육종으로 아버지를 여읜 초등학생 찬성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을 하는 할머니와 둘이 살아간다. 그러던 중 버려진 늙은 개 에반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게 된다. 에반은 암에 걸렸고 너무 아파하는 에반을 위해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려고, 찬성은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한다.

돈은 마련했지만 뗄 수 없는 휴대폰의 유혹과 에반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에반이 스스로 차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것,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옆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이 또한 너무 힘들고. 

오래전, 이수가 현관을 나설 때면 '저 사람 저대로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길 가다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났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115쪽)

[건너편] 노량진에서 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처음 만났던 이수와 도화. 도화는 경찰공무원이 되고 이수는 육 년을 했지만 떨어졌다. 손을 털고 나와 다른 직장을 전전하지만 결국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노량진으로 들어간다. 이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내년까지만 참아달라 하지만 도화의 마음은 이미 강을 건너고 있다.

슬픈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꼬집는다.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라고 말하는 도화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자신이 처한 현실 때문에 연인을 붙잡지 못하는 이수의 마음도 아프다.

책을 덮으면 회색 우울이 몰려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고난과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좌절한다.

사소한 일로 누군가와 이별을 하기도 하고,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적절한 고통과 스트레스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다.

이 소설에는 여러 종류의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내 주변에는 오지 않을 먼 얘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먼 곳의 얘기는 아니다.

 나자신과, 내 주위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 절망하지 않고 이를 잘 극복해서 현재를 지켜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