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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 가을 겨울 / 이옥남

일간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작가가 추천해 준 책이 있어서 읽었다.

 아흔일곱 번째 봄을 살고 있는 사람. 이옥남 할머니. 한평생을 밭일을 하면서 30년 동안 서투른 글씨로 일기를 써 왔다.

그 삶의 기록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콩밭을 매면서 콩잎을 바라보면서

그리도 귀엽게 생각이 든다.

그러니 뽑는 풀도 나에게는 고맙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풀 아니면 내가

뭣을 벗을 삼고 이 햇볕에 나와 앉았겠나.

그저 풀을 벗을 삼고 옥수수도 가꾸고

콩도 가꾸고 모든 깨고 콩이고 조이와 팥도 가꾼다.

그러면서도 뭣이든지 키우기 위해 무성하게

잘 크는 풀을 뽑으니 내가 맘은 안 편하다.

그러나 안 하면 농사가 안 되니 할 수 없이

또 풀을 뽑고 짐을 맨다.

뽑아놓은 풀이 햇볕에 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맘은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또 짐을 매고

풀을 뽑으며 죄를 짓는다.

 

 

힘든 밭일을 하면서 보잘것없는, 하찮게 여겨도 괜찮을 풀잎 하나에도 측은한 마음과 미안함이 들어 손이 멈칫해지는 할머니의 고운 심성을 엿볼 수 있다.

큰딸이 온다기에 줄려고 개울 건너가서

원추리를 되렸다.

칼로 되리는데 비둘기가 어찌나 슬피 우는지

괜히 내 마음이 처량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그래도 원추리나물을 뜯어가지고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아래 밭에 가서 두엄을 폈다.

누가 집으로 들어가기에 큰딸이 온 것 같애서

얼른 일어서서 집으로 오는데 진짜 딸이 왔네.

정말 반가웠지.

그런데 금방 가니 꿈에 본 것 같구나.

 

소나무 가지에 뻐꾹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일곱 살 때부터 길쌈을 배웠고 평생을 밭에 가서 일만 하고 살아온 할머니.

일하는 게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를 하지만 마냥 좋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농사일이란 것이 힘이 드는 생활이란 것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골의 정취

투둑새와 뻐꾹새의 울음이 정겹다. 농촌의 정경을 아름답게 잘 묘사해놓았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즐거움도 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언제 올까 늘상 기다리고, 또 왔다가 금방 가는 자식들이지만

하나라도 더 챙겨서 손에 들려 보내지 못했음을 자식들이 가고 나서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딸들을 늘 기다리며 혼자 살아간다.

책 전반에 쓸쓸함과, 격한 외로움과, 자식을 그리워하는 모정이 도처에 깔려있다.

지금의 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남겨짐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하지만 세월이 더 흐르면 혼자는 몹시 공허하고 적적한 삶이 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의 이야기, 내가 몰랐던 내 어머니의 마음.

엄마에 대한 때늦은 후회와 그리움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바쁜, 삭막한 도시생활에 마음이 지칠 때 한 번씩 꺼내서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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