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읽은 소설이다. 젊은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고 순수하다.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책.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등단작이자 제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다. 이 책 외에도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는 '쇼코의 미소'를 포함해서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쇼코의 미소]
소유가 고등학교때 쇼코가 일본 자매학교 학생 신분으로 견학을 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소유네 집에 거주하면서 쇼코는 일본어를 잘하는 할아버지와 친해졌고, 쇼코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 쇼코와 할아버지는 펜팔 친구가 된다.
퉁명스럽고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편지로 쇼코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며 오랫동안 잘 지내게 된다. 쇼코는 편지에서, 할아버지에게는 밝은 면만을 보여주고, 소유에게는 어두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모순을 보이게 된다.
어릴 때 학생으로 한국에 왔던 쇼코는 예의 바르고 쾌활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대학생이 되어 소유가 찾아가서 만난 쇼코는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병을 앓고 있는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그들이 정신적으로 기대서 살아왔던 서로의 할아버지는 병을 앓다가 모두 세상을 떠난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소유와 쇼코는 할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적 자립을 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며 떠나간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다. (24쪽)
다들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전편에 흐르는 깊은 한숨들.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깊은 슬픔들이 내재해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89쪽)
누가 먼저 떠났고 누가 남겨지게되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떠났고, 남겨졌고, 중요한 건 그럼으로써 둘의 관계가 해체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또 다시 다른 이름으로 만났을 때 전편의 그 관계가 후속 편에서도 지속될 수 있을까. 퇴색되어버린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날까. 절대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이전의 감정까지 그대로 빼앗아간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던 추억만으로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90쪽)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편이 나았다.(105쪽)
그런 것일까. 무거운 짐을 같이 짊어지고 평생 살아낼 자신이 없으면 얄팍한 애정보다는 매서운 무정함이 오히려 나을것같다.
희망고문은 상대의 삶을 갉아먹는 일이다. 당장 아프고 상실감을 느끼게 될지라도 훗날을 위해서는 무정함이 더 필요하다.
누구나 가슴속에 슬픔 하나씩은 묻어두고 살아들 간다. 숨겨두었던 그 슬픔이 마구 분출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 가슴 시린 단편들이다.
책을 덮으면 우울한 기운이 몰려온다고나 할까. 잊고 지냈던 시절에 대한 갑갑함. 분노. 그런 것들..
암울한 시대적 상황, 곳곳에 깔려있는 죽음.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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