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작가 조남주는 <82년생 김지영>을 쓴 작가로서 이 책은 김지영의 연장이라고 해도 좋을,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아홉 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의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27편의 짧은 소설로 묶은 책 <그녀 이름은>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
2.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3. 애하머니 겅강하새요
4.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쓰는 과정보다 듣는 과정이 더 즐겁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많은 여성들이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는데" "내가 겪은 일은 별일도 아닌데"라며 덤덤히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흔하게 일어나지만 분명 별일이었고 때로는 특별한 용기와 각오, 투쟁이 필요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체로 의미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책을 펼치며 여러분의 이야기도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 작가의 말에서
사회 각층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회사 내 성희롱을 당한 여직원이 그것을 근절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교 급식 조리사의 파업, 해고 승무원의 투쟁, 가난으로 인해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생리일에 결석하는 여중생..
그중에서 <진명 아빠에게>라는 제목으로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와 닿는다.
요즘 그런 말이 있대. 전업주부 딸은 백점, 칼퇴근하는 공무원이나 교사 딸은 팔십 점,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에 집에 오는 직장인 딸은 오십 점, 밤 열두 시에나 퇴근하는 대기업 직원 딸은 빵점이라고, 딸이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손주를 오래 봐야 하니까. 진명 아빠 우리 딸, 우리 자랑스러운 딸이 빵점이래.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는데 아니란 말이 선뜻 나오지를 않더라고. 사실 애들 보는 거 많이 힘들어. (197쪽)
아침 일찍 일어나 손주들 밥 먹여서 유치원 보내고, 청소하고, 장보고, 애들 받아서 오후 내내 봐야지. 간식 먹여야지. 또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손목, 허리 어디 안 아픈 데가 없지...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딸이 회식했다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는 엄마 미안해, 하면서 펑펑 우는데 마음이 참 안 좋았어. 그게 왜 걔가 미안할 일이야. 걔는 내가 가르친 대로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근데 진명 아빠,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201쪽)
이 대목에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지금까지 잘 키운 소중한 딸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손주 봐주는 것도 본인 몫인데 남은 내 인생을 생각하면 또 억울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해져 온다. 내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덮고 난뒤의 솔직한 개인적인 평은 <82년생 김지영> 보다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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